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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생각-/책

아날로그 건축 로망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아날로그 건축 로망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전공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의 대부분은 이상하게 거부감이 든다. 누군가는 잘 알기 때문에 공감되지 않느냐고 묻지만, 오히려 시청자 로망 채우기 식의 것들이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투명 보드 위에 스케치를 한다든지-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채널을 돌린 적이 더 많다.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건축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있다고도 하니 단순 빈정거림이 섞인 사견일지도- 여튼.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가장 최근에 설계를 하는 지인에게 추천 받은 소설이다. 새끼손가락 두 마디 조금 넘는 정도의 책을 사고 또 얼마나 환상적으로 써 놓았으려나 하는 비아냥의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축과를 지원하고자 마음먹은 이후 처음으로 건축에게 저격 당한 듯 하다.

 

 

 

9시가 되면, 전원이 자기 자리에 앉아서 나이프를 손에 들고 연필을 깎기 시작한다.

연필 깎는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기타아오야마나 여름별장이나 같았다.

시작해보니 분명히 그것은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작업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오전오후 최대 자루 정도 연필을 쓰는 것이 일의 정확성을 지켜지고,

연필도 정성껏 다루게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보다 깎아야 하는 것은 필압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난폭하거나 너무 서두르거나

그중 하나로,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

 

설계를 하면서 선을 그리는 일을 고민스럽게 생각한 적은 없다. 잘못되면 지우면 되는 것이고 다시 그리는 일은 어려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당시의 나였다면 아마도 매일 아침 다스가 넘는 연필을 깎았을 것이다. 위의 글은 주인공 사카니시 도오루가 여름별장에서 보내는 1개월의 도입부이다. 짧은 글을 읽는 동안 당신은 연필을 깎는 소리, 도면을 그리는 모습까지 여러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는 조곤조곤 시절 아날로그 건축을 이야기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특히나 공간을 묘사하는 부분이 많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릿속으로 건축물의 평면도를 그리고 있는데, 재미있는 막힘 없는 설명과 세밀한 묘사 덕분에 소설임을 알면서도 글의 소재들이 실존하는 것인 인터넷에 검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ㄷ자 형의 여름별장, 아스카야마 교회- 작가 스스로는 노장 무라이 슌스케의 건축을 ‘안이한 자기과시욕에 구애되지 않았고, 실질적이면서도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어렵겠지만, 결국은 기능성에 초점을 둔 일본 특유의 조밀한 가옥구성이나 이음부가 견고한 목재 가구처럼 소박하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것들이 아닐까- 그 시절, 빠르지는 않았지만 하나를 그리는 동안 누군가의 일상을  한번이라도 더 떠올렸을 것이고, 화려하진 않더라도 정겹고 익숙한 것들을 담으려 했을 것이다. 결국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지던 친근함은  모뉴먼트를 자처하는 현대의 건물들 틈에서 간과되어지고 있는 아날로그 건축만 섬세함인 셈이다. 최첨단 스마트시대에 투박한 빈티지 것들에 향수를 느끼듯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화구통과 홀더가 갖고 싶어졌다. 언젠가 도면을 쳤다고 표현하던 동기의 한마디에 도면은 그리는 것이라며 무척이나 화를 내시던 교수님이 생각난다. 당시 교수님의 울분을 공감할 없었던 나에게조차 <여름은 오래 그에 남아>은 로망서였다.

 

160123 Seoul _ R : Jc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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