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GUE LIVING 2016 SPECIAL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에는 누군가의 성공궤도를 기록한 에세이가 유행이었다. 책대로 하면 누구든 성공이라도 할 듯 한 권도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갖고 있었다. 몇 해전부터는 그 판도가 조금 바뀌어 판타지와 추리, 장르, 국가를 불문하고 소설이 유행이다. 일부는 이러한 트렌드가 시대적 풍조/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TV프로그램의 유행-요식이나 리얼리티 등-도 이러한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영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설과 무관하게 무료히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라면 항상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책이 있다. 교훈을 담은 에세이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도 아닌 바로 ‘잡지’가 그 주인공이다. 독자는 잡지를 보며 가슴 찡-한 감동이나 인생교훈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슥슥 넘어가는 책장 속에서 근래 각광받고 있는 트렌드나 가십거리를 알아가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잡지에서 풍겨지는 ‘가벼운 책’, ‘쉬운 책’이라는 이미지가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불행히도 건축/인테리어 관련 정기간행물은 이런 잡지의 유행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최근 건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여전히 건축잡지는 ‘무거운 책’이다. 그것은 주로 건축잡지가 다루는 주제 면에서 오는데, 매달 반복적으로 ‘건축은 –다’ 식의 건축을 정의하는 글들이 여전히 전문서적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독자의 흥미를 떨어트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건축잡지를 사상으로 가득찬 빨간 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VOGUE Living>은 건축가와 클라이언트를 균형있게 소개하며 가십처럼 풀어 기존 건축잡지와는 다른방식으로 진행한다. 격월에 한번 발행되는 이 잡지는 소개하는 클라이언트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개인별장이며 피아트의 후계자이자 기업가 라포엘칸의 집은 표지에 제목 한 줄만으로 많은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잡지는 전문 중 70%의 기사가 해외 셀럽들의 인테리어에 관한 글로 간혹 국내기사가 섞여있다. 인테리어적 요소의 해설보다는 그 분위기와 상황을 묘사하는 외국의 기사를 보면 기존의 건축잡지와는 다르게 유연하게 읽힌다. 물론, 극도로 세심한 묘사 -라포엘칸의 기사로 예를 들자면 어떤 아침식사를 했다던지, 향후 스케줄은 무엇인가 등의 과한 사족- 를 보면서 기존 <VOGUE>의 가십지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국내 기사들의 표현과 비교하며 읽는 글로벌잡지만의 매력이겠다.
글 외에도 페이지를 가득 메우는 풍부한 색감의 사진들은 특별한 집중력이 없어도 한눈에 인테리어가 들어온다. 특히나 이름만으로 특유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유명인사들의 집은 그 상상과 현실이 얼마나 유사한지 가늠하는 것 만으로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 대표 패션디자이너 마시모 지오르게티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마시모 지오르게티는 개인 브랜드 <MSGM>을 운영하며 그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으로 신세대 디자이너라는 입지를 굳혔고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하다. 그런 그의 집은 <MSGM>의 디자인관을 닮아 단조롭지만 매력적이다. 특별한 패턴이나 장식 없이 재료 본연의 재질에 충실하며 색으로 포인트를 준 브루탈리즘적 인테리어에서는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물에서 오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 밖에도 TOMS의 창업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나 국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성아의 집 등 주인을 꼭 닮은 집들을 소개하는 <VOGUE LIVING>의 센스 있는 안목이 돋보인다. (혹여 다른 매체에서라도 이들의 집을 보게 된다면 본인이 말하는 ‘주인을 꼭 닮은 집’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VOGUE Living>은 특별한 지식 없이도 인테리어와 건축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었다. 소개되는 클라이언트며 가구, 인테리어 소품을 보면 현실적 경제관을 벗어난 가격에 ‘역시나 가십지구나-‘ 싶고, 잡지를 보며 실제로 몇 명이나 이런 소품을 구매하고 따라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국내외의 건축/인테리어를 소개하면서 클라이언트와 건축가를 균형있게 다룬 점은 높이 사고 건축정기발행물로서 새로운 시도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한 건축물을 소개하는 것도, 누군가의 건축관을 말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앞으로 건축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되어야한다.
160809 _ R : Jc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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