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유난히 무더웠던 평일 오후. 커피를 사서 복귀하는 길에 부산에서 온 직장 동료가 말하더라. 왠지 모르겠는데 서울 사람들은 바다에 환장을 한다 고. 야이 씨- $@&#! 반박하려다 참았다. 들어 처먹을 놈도 아니지만 일부 맞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은 지평선 찾는 일을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건물이 그득그득 하다보니 때로 탁 트인 바다가 그립다. 애초에 태어난 곳이 서울인데 바다가 그립다니, 우습다. 여튼. 바다에 환장하는 서울 사람, 동해에 다녀왔다.
1. 여름 바다를 즐기는 방법
4시를 조금 넘었을 무렵, 강릉에 도착했다. 같은 시각,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친구는 덥다고 하소연이다. 미안하지만 공감해줄 수 없다. 이곳은 아주 시원하거든ㅎ. 점심 약속을 위해 차려 입었던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짐을 챙겨 바다로 향했다. 강문과 송정 해변 사이, 이름 모를 바다에는 사람이 없다. 나와 복실이는 어디선가 떠내려온 듯한 나뭇덩이 아래에 돗자리를 폈다. 그리고 소나기를 대비해 챙긴 우산으로 재빨리 그늘을 만들고, 캔맥주로 목을 축인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맥주는 따가운 햇빛과 잘 어울린다. 역시 맥주는 여름 음식이지!
우리는 이름 모를 바다에서 몇 시간이고 누워있었다. 여름의 열기로 땀이 옷을 적시려 치면 치마를 걷어올리고 바다로 향한다. 무릎까지 몸을 담그면 금세 추워서 발가락 끝이 시리다. 그럼 다시 우산 밑으로 기어들어가 책을 읽는다. 이 패턴을 반복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몸이 노곤하다. 침대에 몸을 맡기고 모래와는 다른 푹신함을 느끼면 어느새 하루가 끝난다. 수영, 스킨스쿠버, 서핑까지. 사람들이 여름 바다를 찾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우산과 돗자리, 책과 맥주 한 캔이면 충분하다.
2. 바다와 자전거
저녁과 밤의 아슬아슬한 경계. 물결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늘이 어두워지자 바다를 찾는 손님과 차량이 뜸해졌다. 우리는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바다로 향한다. 그는 자전거를 탄지 10년이 넘었다며 어색해 했다. 하지만 뱉은 말이 무색하게 금세 익숙해졌고, 앞서 가던 나를 추월한다. 사실 선두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갈림길 없이 곧게 뻗은 도로의 끝에 무사히 도착하면 된다.
그렇게 다다른 서피비치(Surfyy Beach). 햇빛이 가장 뜨거울 시간에도 사람들로 붐볐던 해변이 텅 비었다. 포토존으로 세워놓은 조형물이 곧 쓰러질듯 허접하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바퀴벌레처럼 생긴 갯강구가 바다를 쓸고 닦는다.
돌아오는 길은 훨씬 빠르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도로 옆에 자리한 숙소에는 바베큐 파티가 한창이다. 낮에 새빨갛게 태운건지, 고주망태가 된 것인지, 얼굴이 벌겋게 물든 아저씨가 담배를 태운다. 차로 이동하면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피자집도 슬쩍 구경해본다. 하늘에는 북두칠성이 떴다. 서울에서는 자세히 보아야 별자리를 발견할 수 있지만 이곳에선 도로에서 껌자국을 찾는것 만큼 쉽다.
3. 스마트폰과 여행
스마트폰. 이름 참 잘지었다. 여행은 스마트폰의 순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4박 5일 동해여행에 함께한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서도 여행 속 스마트폰의 귀중함을 여실히 느껴진다. 작가 김영하가 이 책의 원고를 집필할 무렵에는 아이폰이 없었다. 초행길을 가려면 조수석에서 지도를 보며 길을 알려주어야 했다고 한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지도를 볼줄 모르거나,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드는 체질이라면 끔찍하겠지...?
스마트폰 없는 여행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이번 여행만 해도 그렇다. 나와 복실이는 어플로 택시를 불러 강릉을 쏘다녔다. 행여 택시기사가 멍청해보이는 관광객을 등처먹을까봐 실시간으로 위치를 체크하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맵으로 다음 여행지까지의 이동거리와 시간을 확인했고, 블로그에 공유된 팁으로 주차 자리도 알아보았다. 여행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스마트폰을 쓰지 않은 시간은 숟가락을 잡는 동안 뿐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런 편리함 때문에 놓치는 부분도 많다. 너도나도 맛집이라고 포스팅한 곳은 아침부터 100팀 넘게 대기해야 한다. 커피 한잔 마시기 위해 뙤약볕에서 40분을 넘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곳의 음식이 정말 맛있고, 포스팅 되지 못한 곳은 맛이 없는 걸까? 누구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하는거냐? 강릉의 핫플레이스 안목해변. 해일이 치면 가장 먼저 무너질, 과거에는 줘도 안가지는 땅이 블로그, 유튜브의 입소문을 타면서 이 지역에서 가장 비싼 자리가 되었다.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카페에는 온통 관광객으로 넘친다. 이제 '안목 해수욕장'보다 '안목 카페 거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안목해변보다 이름모를 바다가 좋다. 한적한 해변에는 비루한 몸뚱이에 거적떼기를 걸쳐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눈치 싸움을 벌이거나 쓰레기를 피해다닐 일도 없다. 물론 이곳도 유명해지면 더이상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아니게 될 것이다. 주변 상권에는 미안하지만 내심 스마트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길 바란다.

2020년 6월 14일(일)
오늘 쓰는 어제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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