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시간, 재미로 본 MBTI 테스트는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했다. 시끄러운 거 너무 싫어하고, 잡담 같은 것도 잘 못하고 싫어함. 인간관계 계산적. 스스로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낯면도 모르는 이의 블로그를 통해 읽으니 화가 나기보다는 신기했다. 많은 표현에 공감했지만 딱 하나, 반박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엄청 게으르고 미루기의 끝판왕. 게으른거? 맞다. 요리, 설거지, 청소처럼 일상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일들은 취미가 없다. 자취하는 동안 밥 차리는 게 귀찮아 맥주만 마셨더니 고등학생 시절의 몸무게까지 살이 빠지기도 했다. 어차피 다시 해야 한다면 애초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자세. 미래 남편 기억해-
그런 나도 빠르게 추진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소비다. (어쩌면 돈을 버는 유일한 이유) 한 제품에 꽂히면 싫증이 날 때까지 열심히 파고든다. 서울에 매장이 있다면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방문해서 실물을 확인하고, 온라인의 가격차, 중고상품, 사용후기까지 모두 꼼꼼히 살핀다. 모든 정보를 탐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주일 내외다. 평소에 행동이 느리다며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놀라기도 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 큰데 어떻게 망설일 수 있겠나? 그래서 결론은! 오늘도 소비해버렸다. 프라이탁 지갑:)
프라이탁은 이미 관심이 꺾인지 오래인 브랜드다. 본품으로 사기에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특유의 방수포가 때로 지저분하게 느껴지니 오래 사용하지 못한달까? 그런데 프라이탁 F57 알란(ALAN)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에 뒷면의 끈을 당기면 카드가 함께 올라오는 작동방식까지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다. 하지만 구매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단종된 모델이에요, 이제 재고가 없어요. 출시한지 6년 만에 단종이다. 이미 오프라인 매장 대부분은 재고가 0, ZERO다. 오 이런. 결국 중고사이트를 열심히 뒤진다. 중고나라, 번개장터, 당근 마켓. 하다못해 프라이탁 마니아들이 가입한다는 카페까지 훑는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나처럼 단종 소식을 듣고 재고를 모으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종종 매물이 올라와도 3시간 내에 사라진다. 판매 완료, 이렇게 가슴 아픈 단어였나? 하지만 나, 마음먹으면 칼 안 뽑고도 무를 썰어낼 여자. 밤 12시까지 휴대폰을 뒤지다 결국 샀다. 2개! 여기서 만족할 수 없어 다시 열렬히 서칭 한다. 그리고 6월 6일, 압구정 프라이탁에서 알란을 구매한 사람의 블로그 포스팅을 접한다. 화면에 눈을 가까이 대고 사진을 줌, 줌. 빨간색과 하늘색 계열의 제품만 남아 있는 듯하다. 소식을 확인하자마자 온라인 페이지에서 방문 예약을 한다. 오전 7시 무렵인데도 당일 방문 가능한 시간이 없다. 이런, 한발 늦었을까 조마조마하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확인한다. 36시간. 어떻게든 지나갈거다. 하루가 길다.

2020년 6월 17일(수)
오늘 쓰는 어제 일기, 끝.
2020년 6월 18일(목)에 적는 미래 일기
다행히 재고가 네 개 남아있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탈락. 자, 다시 서칭을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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