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자주 넋을 놓는다. 멍-하게 있기보다는 눈을 마주치고 적절히 맞장구치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데, 주로 상대방의 옷차림을 훑거나 회사의 일을 곱씹는다. 분명 표면적으로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내 정신은 다른 세상에 있다. 유체이탈이 특별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나쁜 습관이 빛을 발하는 때가 있는데, 바로 회의 시간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회의에서 나눈 대화를 100이라 했을 때 주제에 맞는 말은 평균 70이 안된다. 웃기지 않은 우스갯소리, 했던 말의 반복, 대화의 주제와 맞지 않은 이런저런 얘기들은 5분 채 안되지만 업무시간의 피로도를 가증한다. 그럴 때면 내 정신건강과 업무효율을 위해 열정적인 눈빛, 표정을 유지하면서 진지하게 딴생각을 한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다. 대표는 최근 지인의 추천을 받아 사업 확장을 이끌어갈 적임자를 뽑았다. 여러 스타트업 기업에서 고문 역할을 했다는 그는 확실히 여러 면에서 노하우와 대책을 가지고 있었고 첫 만남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 다음 단계를 위해서 준비해야 할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잠시였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들은 얘기는 꽤 신선했다. 어제는 두 번째 미팅이었다. 기획된 내용과 현사업의 연계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곧바로 그의 마케팅 내용에 대해 강의가 이어졌다. 처음 30분은 열심히 들었다. 음, 좋은 방법이네. 그런 방법도 있었군. 하지만 아무리 좋은 얘기도 장황하면 지루해지기 마련. 숫자가 폭주하고 사례가 넘치는 이야기를 아무말 않고 듣고있으니 기가 빠졌다. 90분 수업을 듣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다음 30분은 유체이탈을 시전했다. 하지만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헛웃음이 나고 몸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숫자를 들으니 멀미가 나요. 이제 그만 말씀해주세요. 강제로 미팅을 종료했다. 그는 할말을 다 못 해 아쉬운 듯하다.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얘기해봐요. 그때까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야이 &@&^%! 미팅이 끝난 후에 한참 머리가 아팠다. 곧 코피가 쏟아질 것처럼 콧속 깊은 곳이 찌른 듯 아렸다. 하지만 아직 다음 회의가 남았다. 진이 빠져 테이블에 엎드려 있으니 대표가 제안한다. 내일 하는게 좋지 않겠니? 그럴 수 없다. 다시 한번 1시간 30분의 회의가 휘몰아친다. 입으로는 말하고 있지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뇌까지 닿지 않는다. 오늘은 정신이 몸에 붙어있고 싶지 않나 보다. 두 차례 회의를 마치니 하루가 끝났다. 퇴근길, 음료나 사려고 들어간 편의점에서 주인아줌마가 그러더라. 회사원이세요? 얼굴에 피곤이 녹아내리네. 피곤하시죠. 네. 아주 많이요.

2020년 6월 19일(금)
오늘 쓰는 어제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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