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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쓰는 어제 일기-

오늘 쓰는 어제 일기 7. 남의 돈 빌리는 일이 쉽겠냐마는 -

퇴근 후 소파에 앉아 회사 일로 구시렁대고 있으면 엄마가 말한다. 남의 돈 받는 게 쉬운 줄 알아? 아, 당연히 알지. 그래서 매일매일 찌들어도 열심히 출근하는 거 아냐. 근데 말이야, 겪어보니까 남의 돈 받는 거보다 은행 돈 빌리는 게 더 힘든 거 같아. 

 

지난주 월요일, 대출 한도를 확인하기 위해 은행에 갔다. 소득 증명서, 고용보험증명서- 서류가 부족해서 퇴짜 맞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말 동안 만반의 준비를 했다. 9시 땡- 은행의 내부를 가리던 블라인드가 올라간다. 바로 2층으로 올라가 담당 직원을 찾았다. 무슨 일로 방문주셨나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직원은 계장이라고 했다. 대출 한도 좀 알고 싶어서요. 떨지 않고 침착하게 말한다. 투명한 아크릴 파티션 아래로 준비한 서류를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체한도는 모바일로도 간편하게 조회가 가능하세요. 또 인터넷 뱅킹 같은 비대면 대출로 하시면 우대금리도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아 이런. 설마 대출까지 조회가 가능할 줄이야. 동안의 계장은 파티션 너머에서 조용히 방법을 알려준다. 금액이 뜬다. 오, 숫자가 꽤 기네? 뒷자리부터 하나하나 세어 본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 잉? 숫자를 잘못 세었나 보다. 다시.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 ... 응? 저.. 금액 조회했는데, 이게 최대인가요? 혹시 비대면으로 했을 때 금액이 더 적게 나오는 건가요?  예상보다 낮은 가격에 직원에게 묻는다. 남들은 전세자금으로 1억 도 잘 빌리던데. 이상하다. 아니요. 그렇지는 않고요. 대출은 일반적으로 소득의 120%까지 가능합니다. 이것도 주거래 은행으로 사용하면서 납부가 밀리지 않을 경우에만 해당되고,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습니다. 아, 소득.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서운하다. 그것이 마치 내 신용도의 값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어제, 난생처음 대출을 신청했다. 현재 시각 오전 8시 45분. 비대면으로 하면 우대금리가 적용된다는 직원의 말을 기억하고 노트북을 켠다. 그리고 사이트에서 정해놓은 단계를 차근차근 따라간다. 뭔 동의란이 이렇게 많아? 수십 번 마우스 클릭을 한 것 같은데 아직 아직 STEP1. 갈길이 멀다. 첫 번째 장애물, 프로그램 설치. 팝업창이 뜨면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시작하란다. 그런데 팝업창이 안 뜨네? 괜히 키보드 보안프로그램만 잔뜩 깔고, 보안 시간 초과해서 다시. 그렇게 40분이 사라졌다. 몇 번의 반복에 열이 오른다. 키보드를 내려치고 싶지만 뒷자리 동료들을 위해 꾹 참는다. 대신 휴대폰을 꼭 쥐고 은행에 전화를 건다. 오전 9시 30분, 16명의 대기 인원을 뚫고 겨우 통화했다. 이제 한 고개 넘었다. 보안 시간 초과, 중복 로그인. 몇 번의 실패를 거쳐 마지막 단계까지 왔다. 이제 약정서에 동의만 하면 끝. 그런데 클릭이 되지 않는다. 1시간이 사라졌다. 지금 시각 10시 35분. 출근하고 2시간이 지났다. 나 왜 일찍 출근한 거냐-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하소연한다. 그럴 시간에 은행을 다녀와. 매정한 사람아, 내가 그런 답을 바란 게 아니 쟈나. 후-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첫 단계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번에도 같은 곳에서 멈춘다. 화가 머리 끝까지 차 메두사처럼 머리카락 끝이 솟아오를 듯하다. 다시 은행에 전화한다. 대기 22명. 몇 분 사이에 대기 인원이 늘었다. 그건 저희 관할이 아니라서요~ 관련 부서 연결드리겠습니다. 힘들게 연결한 상담원은 서로의 책임이 아니라며 미루기 바쁘다. 좋은 소리 나갈 리 없다. 제가. 이거 오전 중에 처리해야 하는데 지금 2시간째 붙잡고 있어요. 무슨 부서든 상관없고 방법 알려달라고요. 원격 연결까지 해봤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심기가 뒤틀린다. 와 씨, 대표 놈 돈 받는 거보다 은행 놈들 돈 빌리는 게 더 힘드네. 내가 돈을 안 갚는데? 쉽게 대출받으라고 프로그램 구축했으면 좀 편하게 해야지!!! @#($)%!!! 마지막이다. 옆자리 직원에게 양해를 구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다. 한 번에 성공한다. 샹- 결국 문제는 내 컴퓨터였나 보다. 오늘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나, 부자 될 거다. 남의 돈, 은행돈 필요 없을 정도로. 

 

 

SHUT UP AND TAKE MY MONEY!

 

 

2020년 6월 23일(화)

오늘 쓰는 어제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