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90분은 길바닥에서 보내기엔 무료하고 아까운 시간이다. 다시말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과를 보기에 적당하다는 말이지. 암, 책을 봐도 20 페이지는 거뜬하고, 뜨개질을 한다면 10줄 이상을 만든다. (어제 옆자리 사람이 뜨개질하는 사람을 보니 그렇더라) 술자리를 위해 체력을 보충하는 늦은 낮잠시간으로도 딱이지. 사실 나는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한다. 어제는 오랜만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켰다. 내가 선택한 영화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평소 <카모메 식당>을 좋아하는데, 그와 유사한 콘텐츠로 뜨더라. 상영시간은 90분이 좀 넘지만 이정도면 괜찮다.
영화는 '힐링'이라는 주제 말고는 그리 닮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지겹다. 하지만 새로운 영화를 선택하기엔 애매하다. 마실 것 없이 고구마를 밀어넣는 기분으로 꾸역꾸역 보고 있을 즈음, 조연의 대사 두 마디가 나를 설레게 한다. 여름에 맥주를 안마시다니. 그건 여름의 3분의 2를 만끽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맞지, 맞지. 완전 맞지.
버스에서 내려 고민한다. 아, 맥주를 마셔 말아. 사실 매일 고민한다. 냉장고에서 차갑게 몸을 식힌 맥주는 좋은 저녁이 된다. 하지만 다음날 눈을 뜨는 일이 힘들어 대부분 후회한다. 오늘은 참자. 깨끗이 씻고 저녁밥을 차린다. 저녁 메뉴는 콩을 발효해 만든 템페.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튀기듯이 굽는다. 초고추장처럼 쨍하게 붉은 스리라차 소스를 접시 한편에 담고, 소파에 앉았다. 하루 종일 책상에서 일하려니 식탁은 왜인지 꺼려져. 따뜻한 템페에 소스를 가득 발라서 한입 베어 무니 다시 한번 맥주가 간절해진다. 템페의 식감, 스리라차의 맵싹함. 아 이거 완전 맥주 안준데? 고민하는 사이 템페가 사라졌다. 조금만 더 생각해볼까? 과자 봉투를 뜯는다. 이것도 스리라차 소스랑 딱이다. 좋은 조합인데? 하지만 소스를 다 먹어 버렸다. 다행일지도- 약간의 부족함 덕에 맥주를 참을 수 있었다. 정말 하루하루 고민이다. 여름은 정말 맥주와의 전쟁이야-

2020년 6월 24일(수)
오늘 쓰는 어제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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