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두던 겨울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얘기했다. 우리 일 시작하기 전에 여행을 다녀와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넘치는 시간과 다르게 지갑은 홀쭉했으니까. 그렇게 떠나자고 약속한 지 어언 6년. 나와 박나우씨는 어느덧 사회생활 3년에 접어들었다. 대기업이었다면 대리쯤 됐으려나? 둘 다 직위 없는 직장을 다니니 만년 사원이지만. 여하튼. 당시랑 비교하면 지갑은 넘칠정도는 아니더라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바닥났고 몇 년 만에 겨우 일정을 약속을 잡고 호캉스를 떠났다. 하지만 어느하나 순탄하지는 않았다. 서로 함께하는 여행은 처음인지라 여러가지를 파악하기 바빴다. 가격대는? 여행지는? 강릉, 속초, 인천? 주변에 어딜 돌아다닐거야? 고심 끝에 결정했다. 밀레니엄 힐튼 서울.
익히 잘 알려진 호텔이라 기대가 크다. 힐튼- 유명하다 못해 그 집안사람들까지 셀럽이 아닌가-? 아빠는 좋은 곳 갈 때는 항상 트레이닝복을 입고 가라고 했다. 집 근처 헬스장인 양 - 슈퍼 온냥 맘껏 돌아다니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빠, 거기는 사람을 주춤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분수, 족히 5m는 돼 보이는 층고의 공간은 사람을 압도한다. 바닥부터 벽까지 곱게 깎은 돌 천지다. 카페는 어디고 로비는 어디냐. 미리 공부하고 들어올걸 그런 건가. 겨우겨우 앉아 커피 한잔 마시니 그제야 마음이 진정된다.
그래서- 그 호텔 어땠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은데 곳곳에 아쉬움이 남는다. 1박 2일, 정확히 20시간 동안 방을 두 차례 바꿨다. 첫 번째 방은 누군가 다녀간듯 흔적이 남아있었다. 청소가 덜 된 듯 침대, 욕조, 거울 앞에 단차를 준 의자까지. 머리카락이 꼬리를 문다. 아마도 청소부의 것이겠지. 그래도 아쉽지 않은가? 갓 포장을 벗긴 박스에서 핸드폰 뙇 꺼냈는데, 흠집이 나있으면 기분이 어떻겠어. 그래서 방을 바꿨다. 두 번째 방은 프리미엄 스위트. 로비 직원분 감사합니다 :) 원룸 같았던 객실에 거실이 생겼다. 힐튼의 포인트, 남산타워가 보인다. 뒷켠에는 서울역이 환하게 도로를 밝힌다. 야경이 박살 난다. 침대에서 실컷 미적거리다가 잠드니 살맛이 난다. 하지만 여기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귀신이 나가라고 내쫓는 것처럼 불이 켜지고 라디오 소리가 났다. 뭔가 잘못 눌렀나? 박나우 씨는 귀신이 하고 싶은 소리를 내는 거라고 했다. 새벽 1시에 자려는데 끊임없이 라디오가 켜고 꺼진다. 결국 마지막 방으로 옮겼다. 같은 프리미엄 스위트에 뷰가 좀 더 넓은 곳으로. 그렇게 마지막 11시간을 보내니 힐튼에서의 밤이 끝났다.
짧은 시간동안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분명 친절하고, 고급지고, 편안한 호텔이다. 바로 어제의 일인데, 꿈을 꾼 듯 아련하다. 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호텔이 여러 가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뭐 결국 그들이 보면 진상짓이겠지. 하지만 당신들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평생에 몇 안될 스위트룸, 덕분에 첫 추억은 좋지 못해.

2020년 7월 14일(화)
오늘 쓰는 어제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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